[비평글] 껍데기로 구현된 감만동, 그 기이함에 대하여
김재환 큐레이터
구도심을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대단지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사업은 지난 30년 동안 전국의 도시에서 꾸준히 추진되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재개발 사업은 도시를 항상 건설 중인 폐허로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재개발 사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기존 마을의 역사와 문화가 송두리째 사라지고 원주민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구도심의 흔적이 완전히 증발해 버리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근현대 생활 문화와 역사가 말 그대로 눈 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어반쉘 Urban Shell>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부산 감만동을 VR, 모션그래픽, 무용을 활용해 온라인 공간에 아카이빙하는 프로젝트다. <어반쉘>은 도시의 기억이 전면적이고 폭력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기억을 붙잡고 남겨둘 수 있을까. <어반쉘>이 선택한 방식은 감만동의 역사와 문화를 온라인 공간에 남겨두는 것이다. 그런데 감만동의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온전히 남길 수 있을까.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감만동의 역사와 문화는 주민 한 명 한 명의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어 그 모든 것을 담아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충실한 재현과 기록의 불가능성을 인정한다면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구성원 각자의 예술적 실천을 통해 시각적 결과물을 남기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7년 부산문화재단 감만창의문화촌에서는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감만동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는 감만동의 역사 문화 생활 자원을 발굴하고 정리해 감만동의 고유 가치를 재발견하고 지역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피란 시절의 판잣집과 공동무덤, 일반주택이 공존하는 감만동 현장을 조사해 전시를 열기도 했으며, 최영 장군의 사당으로 알려진 무민사를 중심으로 감만동의 민속문화를 수집 정리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민의 집을 방문해 개인 삶을 기록하고 물품을 수집하는 감만동 주민 아카이브를 만들기도 했다. 다시 말해 소멸하거나 사라지는 마을에 대한 표준적인 아카이빙 사업은 2017년에 이미 시행되었다. 그런데 이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거나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 활성화되지 않다 보니 당시에 생산된 아카이빙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아카이빙을 시행했으되 아카이브 자료에 수시로 접근하기가 어려워 이 또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반쉘>은 기존 아카이빙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물론 기존 아카이빙 방법에 의한 콘텐츠 생산을 직접 하지는 않고 자신들이 특기를 살려 VR, 모션그래픽, 무용을 활용한 융복합형 영상을 제작해 웹상에 업로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론 이러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게 된 계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온라인미디어 예술활동 지원사업인 ‘아트 체인지업’ 사업에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아트 체인지업은 코로나 이후 온라인 예술활동이 예술창작의 새로운 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온라인에서의 예술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시행되는 사업이다. 비대면 온라인 환경이 활성화될 경우 예술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시작된 이 사업은 현재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활성화가 오프라인 즉 현실계의 예술활동과 유기적으로 잘 연동되어야하는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예술 활동의 발굴 육성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어반쉘>은 바로 이 부분에서도 유의미한 예술활동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데, 현실에서 사라져가는 감만동의 풍경, 역사, 문화를 시각 예술 특성을 반영해 온라인상에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웹페이지 운영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몇가지 물리적인 조건들이 해결되어야겠지만 꽤 오랜 기간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어반쉘>의 총 연출은 홍석진 작가가 맡았으며, 조연출 및 안무는 허경미, 안무 및 출연에는 이종윤, 조은정, 하현봉, VR에는 김기석, 3D 스캐닝 및 모델링은 김보민, 조완준, 음악은 김프로가 맡고 있다. <어벤쉘> 웹페이지에는 3개의 시각적 결과물이 등록되어 있는데 이 결과물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
첫 번째 VR 영상은 <어반쉘_숲>이다. 약 16분의 러닝타임으로 구성된 이 영상은 감만1동 동네 골목을 따라 이동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좁은 골목길 양 옆 담벼락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구멍 너머로는 울창한 숲이 보인다. 이 숲은 감만동의 실제 숲은 아니며 재조합된 숲이다. 이 숲은 폐허가 되어 가는 감만동의 미래 모습을 담고 있는 상상의 결과물이다. 실제로 인간이 방치한 오래된 폐허에서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는 풀과 나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헤집어 놓은 자연을 자연 스스로가 치유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묘한 감정이 발생하는데 바로 이런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 이 묘한 감정이란 자본에 의해 개발과 재개발이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밀려나고 버려진 땅이 스스로 자연화하는 경이로움을 경험할 때 가지는 양가적 감정이다. 화면의 시선은 땅 속으로 들어가거나 뭔가 오류가 난 듯 움직이곤 하는데, 이는 현실을 디지털로 기록하고 재현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한계나 오류에 대한 시각적 표현으로 읽힌다. 어느 순간 골목과 담벼락은 숲 위에 뜬 채로 곧 무너질 것 같은 다리처럼 존재하고 있다. 시선의 이동은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는 담벼락 안쪽과 바깥쪽의 풍경을 모두 담아낸다. 영상이 가상이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러한 연출은 공연이나 연극 무대 장치를 만들어 두 개의 다른 공연장을 하나의 카메라가 이동하면서 촬영할 때 만날 수 있는 풍경과도 닮아있다. 골목을 계속 지나갈수록 골목 안과 바깥이 만나고 교차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어느 순간 숲이 골목 안으로 들어온다. 골목은 걷기가 힘들 정도로 큰 나무들이 자리 잡는다. 좁아지는 골목과 담벼락은 연극 무대 장치의 평면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거리가 사라지고 숲으로 진입하는 순간 기존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골목의 나무는 뿌리째 하늘에 둥둥 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마을의 골목길은 산을 통째로 뒤덮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기에 일종의 산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손이 떠난 감만동은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숲이 되고 산이 될 것이다. 우리는 대단지 아파트로 재개발되는 과정에서 사라질 이 오래된 동네를 기억하고자 하지만, 이 동네 역시 한국전쟁 과정에서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확장된 마을이다. 즉 100년 전으로 거슬러 가면 이곳은 대부분 산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숲을 기억해야 할까. 아니면 판자촌이라는 마을을 기억해야 할까. 우리가 남기려고 하는 현재와 과거도 그 이전의 과거를 허물고 만들어진 것일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아카이빙을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아니 아카이빙이 진정 필요한 것일까. 영상의 마지막에 이르러 골목은 나무가 되고 숲이 되고 산이 되는 걸 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두 번째 VR 영상은 <어반쉘_하늘>이다. 이 영상은 달동네 꼭대기에서 시작한다. 산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방식으로 시작하는 영상인데, 영상 속 풍경은 마을의 껍데기만 공중에 붕 떠 있는 형태다. 애초에 마을은 산 위에 형성되었는데, 산, 즉 땅이 사라지고 건물만이 존재하다 보니 하늘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마을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두 종류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하나는 땅이 사라진 공중에 부양한 산동네인데, 거주 불가능한 구조체가 하늘에 떠있는 형상이다. 마을의 형태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마을의 기능은 사라지고 껍데기만이 파편적으로 남아 있다. 껍데기만 남은 마을은 더이상 마을로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니 애초에 사람이 살았을지 의심이 드는 그런 풍경이다. 다른 하나는 사라진 땅이다. 하늘에 떠있는 마을은 마을만을 상상하게 하지 않는다. 이 마을이 산 위에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면 사라진 것이 마을이 아니라 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어떤 존재의 존재감을 실존했을 때보다 부재할 때 강렬히 느끼곤 한다. 늘 옆에 있는 가족은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가족의 빈자리를 느끼는 순간 그 존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깊게 인식하게 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부모님의 존재가 더 그리워지고 강렬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과적으로 이 영상은 하늘에 떠 있는 마을을 보여주고 있지만 부유하며 사라져가는 마을을 상상하게 되고 더불어 마을이 형성되도록 품어주었던 산의 존재를 더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영상은 숲에서 하늘로 이어지고 다시 마을 다시 숲으로 되돌아간다.
마지막 영상은 <어반쉘_메모리>다. 이 영상에는 두 개의 세계가 등장한다. 하나는 <어반쉘_숲>과 <어반쉘_하늘>을 통해 구현된 감만동의 그래픽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감만동 동네 골목이다. 화면을 보는 우리는 동네의 풍경을 파악할 수 있고 그곳에서 몸짓을 하고 있는 세 명의 무용수를 목격하게 된다. 세 명의 무용수들은 각각 VR헤드셋을 쓰고 빨간색 러그 안에서 춤을 추거나 그곳을 벗어나 걸으면서 춤을 춘다. VR헤드셋을 쓴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어반쉘_숲>과 <어반쉘_하늘>에서 목격했던 가상 세계다. 그러니까 현실의 감만동에 서서 가상의 감만동을 보고 있는 무용수들이 있고, 감만동이 아닌 다른 장소 예컨대 나의 경우는 집의 책상에서 감만동의 실사 영상을 통해 가상의 감만동을 보고 있는 무용수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것도 무용수들이 보는 것도 감만동이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이미지다. 감만동이라는 동일한 개념 속에서 각각의 이미지를 바라보지만 실상 우리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고 있다. 우리는 감만동에 대한 공통의 기억이 있어 감만동을 동일한 범주 내에서 상상할 수 있지만 영상의 내용처럼 실제 지각하고 인식하는 감만동은 개별 사람의 수만큼 다양할 것이다. <어반쉘_숲>과 <어반쉘_하늘>을 처음 보면 조금 당황할 수 있다. 골목을 거닐며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지만 도무지 온전한 골목을 볼 수가 없다. 벽이 뚫려 있고 뚫린 벽 뒤로는 맥락이 맞지 않는 풍경이 펼쳐지고 심지어 땅이 사라지고 하늘에 걸려 있는 마을을 목격하게 되니 말이다. <어반쉘_메모리>도 마찬가지다. 동네 골목이라는 야외 공간에서 어울리지도 않은 빨간색 러그 위에서 VR헤드셋을 쓰고 실제 공간이 아닌 가상의 공간을 보고 있는 인물들의 기이한 움직임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어쩌면 감만동이라는 마을을, 사람을 기록하고 아카이빙한다는 것 자체가 이렇듯 기이한 행동이 아닐까. 기록 행위는 불안전하니 그를 통한 기억 역시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아카이빙에 의해 연장된 기억이라는 것도 그래서 기이한 어떤 것이다. <어반쉘>은 명시적으로는 감만동에 대한 기록을 온라인에 남기는 프로젝트이지만, 사실 기록과 기억, 재현이라는 불완전성을 예술적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그래서 영상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이 기이함은 재현 시스템을 신뢰하는 우리 인식의 기이함을 은유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현의 불가능성을 인지하는 순간 나타나는 이 불안정함과 기이함이 그래서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김재환 / 경남도립미술관 학예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큐레이터협회 소장품정책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비판적 예술이론의 역사』 (공저)가 있으며, <리뷰하다>, <한국현대미술로 해석된 리얼리즘>, <대만현대미술전>, <폐허프로젝트>, <도큐멘타 경남 I – 기록을 기억하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도큐멘타 경남 II – 형평의 저울>등을 기획하였고, 제5회 이동석 전시기획상(2012)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미술관과 지역 공동체가 공공적 관점에서 어떻게 연동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
